사라지고 돌아오는 것들: 회화의 소묘적 리듬-하기

추성아 (독립큐레이터)

강유정은 꽤 오랫동안 풍경을 그려왔다. 작가가 다뤄왔던 특정 장소들은 역사적으로 상처가 깊이 자리한 곳이지만, 실재했던 상황에 주목하지 않고 건조한 방식으로 풍경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작가가 담아내는 풍경은 시간이 중첩되어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이들에게 쉽게 잊혀지는 일종의 반복되는 역사의 굴레 혹은 습관이 자리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간 사건들은 그 자리에 어떤 형태로든 제 자리를 찾는다. 작가는 사건들의 사실을 들춰내지 않고 날카로웠던 상처와 사건들이 아물고 그 위에 다른 시간들이 올려져 현재의 풍경을 이룬 모양새에 주목한다. 예컨대, 섬세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재현의 방식은 작가에게 한 장소가 정치적 발언의 대상이 아닌 보다 복합적인 감각에 대한 것이다. 사건들의 집합체에서 어떤 것은 남고, 어떤 것은 사라지는 그 틈에 대한 반복 즉, 순환적인 흐름과 질서에 대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세월이 자연스레 잊혀 지도록 씻겨 내려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듯이, 풍경과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연스러운 패턴들이 만들어지고 보편적인 사유들이 자리잡는다. 유동적인 상황 안에 어떤 질서들이 채워지는 삶의 이치(理致)같은 맥락으로 보자면, 작가는 아픔이 전제된 장소들 혹은 보편적인 풍경에 매료되어 역설적으로, 보편적인 연결 고리를 상징하는 특정 풍경에서 의미를 발견하려 하고 반복적인 기록의 그리기의 태도를 취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근래에 작가가 반복적으로 화폭에 담는 물과 불은 바다의 질감과 낙하하는 불, 그리고 윤슬로 구체화되어 오랫동안 관심을 두었던 자연의 순환과 리듬에 대한 이미지를 지속한다. 물과 불이 갖고 있는 속성상 빛과 명암, 그림자, 파동, 폭발의 순간들은 작가에게 채화된 일상의 리듬에서 출발한다. 해가 진 다음 어슴푸레하게 윤곽만 보이고 빛의 감각만 감지할 수 있는 밤 풍경을 매일같이 마주하는 작가의 생활 패턴은 자연스럽게 비물질의 운동적인 요소에 눈길을 주며 상징적인 지점들을 발견하려 한다. 그의 회화에서 크게 두 가지 소재를 반복적으로 끌어오는 것은 낙하하거나 터지는 불꽃 혹은 물의 표면에 반사된 빛이다. 이전 작업들이 대체로 원경을 그려냈다면 근작은 근경의 한 장면에 집중하여 대상의 운동성과 질감을 부각시킨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시 제목이 <에스키스 심포니(Esquisse Symphony)>이듯, ‘에스키스’의 개념과 태도, 그리고 리듬과 조화를 포괄하는 ‘심포니’가 특정 원소의 운동성과 질감을 구현하는데 페인터의 태도로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의 초벌이기도 한 소묘 혹은 스케치라고 일컫는 에스키스는 완성된 그림의 밑그림에 해당되고 그린다는 행위를 아우른다. 완성된 작업과 연계되는 일종의 연작 개념에 수렴되는 이 개념은 드로잉과 다르게 그 자체로 독립성을 갖기보다 최종본의 연속선상에 놓이게 된다. 이렇듯, 강유정의 회화는 완결된 형태를 위한 별도의 에스키스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 준비 단계를 거치면서 과정 속에서 나아가는 방향을 터득하고 그리기의 행위에 대한 리듬을 찾는 과정이 빠르게 작업의 완성에 반영된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에스키스는 철저하게 준비 단계를 거치는 경우에 참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분리되어 캔버스로 옮겨올 때의 어떤 안정감을 주는 반면에, 강유정이 실천하는 회화는 물감이 채 마르기 전에 빠르게 그 위를 그려내면서 밑색과 자연스럽게 섞이고, 붓으로 그러내는 그리기의 제스처가 대상의 질감과 리듬감을 가능하게 만드는 쪽에 가깝다. 이와 더불어, 사물을 직접 관찰하거나 기억을 더듬어가며 간략하게 그려내는 에스키스의 특징은 보편적으로 완성이 아닌,작가의 사유를 거칠게 기록하는 태도도 담고 있어 간단히 구도나 색채, 그리고 명암을 그려보기도 하면서 미리 파악하는 세부적인 선택의 과정들이 포함된다.이는 전반적인 작가의 회화가 물감을 두껍게 쌓지 않고 마치, 연필로 흐리게 소묘하듯이 그린 듯한 인상을 주는 붓질과 우리가 소묘할 때 가장 도드라진 부분을 지우개로 지우거나 가장 어둡게 그려야 하는 방식처럼, 핵심적인 부분들을 군더더기 없이 채색하는 등 굉장히 얇게 표면을 구사하는 방식과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예로, <Things We Lost in the Fires>(2022)와 <The Blue Sequence>(2022)는 마치 색지 위에 그린 것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는데, 흰색으로 밑칠한 상태에서 안료 입자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마르지 않은 화면을 유지하면서 붓질이 바로 개입된다. 물감의 점성보다 연필처럼 얇은 선과 유사한 붓질은 특정 순간에 연필로 그렸을 때의 느낌과 유사하게 가져가면서도 연필로 표현할 수 없는 물감의 뒤섞임이 주는 질감이 드러난다. 이같이 강유정은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소묘적인 리듬에 빗대어 핵심적인 요소를 지속적으로 끌고 간다.

다시 풍경의 시간들로 돌아 오자면, 보이지 않는 상처의 기억과 애도의 물결은 장소의 지형에 끊임없는 침식과 풍화를 주어 관념적으로 변하면서, 현재도 그 모양새가 달라진다. 이러한 장소적 풍경의 속성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인상은 늘 유동적이며 변화하는 주기에 리듬이 부여된다. 여기서 리듬감과 삶의 순환을 매개하는 역할에 물과 불이라는 자연적인 요소로 주목하는 작가의 관심은 페인팅의 방식과 이어진다. 강유정은 이번 전시에서 슬픔 자체에 주목하지 않고 보다 근원적으로 상징하고 있는 순환의 고리를 음악적인 요소로부터 참조한다. 특히, 작가가 언급한 ‘소묘적 리듬’은 드뷔시의 교향적 스케치인 <바다(La Mer): 관현악을 위한 3개의 교향적 소묘>에서 영감을 받았다. 세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바다 위의 새벽부터 정오까지 바다의 시간성을 풀어내고 파도와 바람 등 바다와 자연스럽게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를 사유하는 이 곡은 풍경을 객관적 외부가 되어 내적으로 흡수해 재구성된다. 이같은 태도는 작가가 바다 회화를 지속하는 것과 드뷔시의 음악적 인상주의를 감각하는 공통점을 발견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교향적 스케치’라는 주석이 표제에 달린 이 곡은 드뷔시가 바다를 스케치 즉, 에스키스하는 미묘한 시간의 변화를 그린 것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일시적으로 바라보고 경험하는 바다의 시간에 비하면 물리적인 법칙을 떠나 주체적 인상 속에서 유연하게 흘러간다. 이렇듯, 축적된 기억들이 수평선 위에 펼쳐 놓고, 음악적 균형과 리듬을 찾으려고 했던 음악가의 태도처럼 강유정은 페인터로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에 집중하여 소묘적 그리기의 태도로 구현한다. 

이같이, 풍경이 부서지고 흩어져 그 잔해가 남는 모양과 방향을 담는 연작을 지속하는 작가는 의식을 행하듯이 그리기의 태도를 반복한다. 의식이라는 행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Things We Lost in the Fires>, <Always and Forever>(2022), <Sparkler>(2021) 등에서 등장하는 불꽃처럼, 생성과 파괴 그리고 생명으로의 전환을 내포하고 대상을 기리는 들불 축제의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폭발하는 순간의 에너지와 동시에 타 들어가는 불꽃 속에 존재했던 것이 소멸되고 공기 중으로 휘발되는 연기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끝없이 잃어버리고 다른 형태로 돌아와 얻는 어떤 삶의 이치 같은 것이지 않을까 싶다. 인간사에 담긴 염원에 대한 유사한 태도는 샤머니즘적인 속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하나의 역사, 전통으로 자리잡은 의식 자체가 곧 자기 치유 혹은 공유하는 공통 언어일 것이다. 강유정에게는 이같은 태도가 오랫동안 보편적인 풍경을 기록하는 형태로 이어오면서 점차, 그리기의 제스처에 집중하게 되므로 스스로의 회화적 리듬으로 탈바꿈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