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가는 밤

Walking Alone At Night (2019)

 

“어느덧 밤이 깊어져 작업을 마무리 짓고 작업실을 나온다. 홀로 걷는 길은 고요하고 충만하며 때론 고독하다. 하나둘 꺼져 가는 아파트의 불빛을 보며 ‘내일은 뭘 먹을까’, ‘무엇을 어떻게 그릴까’ 고민한다. 한참 걷다 보면 흐르는 물에 잘게 부서지는 빛,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꽃과 검게 우거진 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낮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비로소 보게 되는 것이다. 빛과 어두움이 빚어낸 밤의 형상들은 선명하고도 흐릿하게 드러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는 차츰 어제보다 조금 더 차오른 달, 피어오른 꽃봉오리를 발견하곤 계절이 깊어가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풍경이 홀로 밤을 보내며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보며, 나 또한 홀로 가는 밤의 시간 속에서의 변화와 충만함을 기대하게 된다." - 작업 노트 중 -

<홀로 가는 밤>은 밤 풍경에서 발견한 형상들을 검은 색채로 그려낸 전시이다. 늦은 밤 작업을 마치고 홀로 걸으며, 이 세상에 풍경과 나 자신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경험을 한다. 밤의 시간에 일상의 풍경은 새로운 형상으로 말을 건다. 이미지의 유희를 발견하기도 하고 나아가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성찰에 이르기도 한다. 흰 구와 원뿔, 그리고 부서지는 빛의 일렁임은 밤 풍경에서 발견한 대표적인 형상들이다. 서로 다른 형상이지만 닮은꼴로 겹쳐지고, 윤곽과 명암이 뒤섞인다. 이는 역사적 장소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한 기존 작업의 흰 형상들-피어오르는 흰 연기와 불빛, 말뚝-과도 닮아 보인다. 그러나 신작에서는 거대 서사에서 잠시 벗어나 일상의 풍경에 눈을 돌린다. 작품 속 반복되는 이미지의 출처, 키아로스쿠로의 실험, 형과 색에 대한 입장을 탐구하며 본인이 바라본 세계가 어떻게 그림으로 옮겨지고 있는지 돌아본다. 그리고 나아가 풍경과 그림으로부터 위로를 받으며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