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성남청년작가전1_강유정: 발현發玄

박천남 (성남문화재단 전시기획부장)

강유정의 회화는 기억저편으로 사라진 이런저런 역사적 사실과 사회적 사건의 상흔을 현재적 시점과 관점으로 환기하고 떠내려는 지적 노력이다. 세상의 시선과 관심으로부터 생략되어있거나 소외되어 있는 심리적 변경, 혹은 물리적 지형을 예의 끄집어내고 들여다보려는 예술적 실천이다. 생활 주변에서 흔히 만나고 경험하는 지형과 그곳 시공에 잠복되어 있거나 서려 있는 어떤 기운, 혹은 흔적들을 채집하고 확인하려는 미학적 관심과 반영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관심과 작업 충동은 역사 서적이나 다큐 등 다양한 자료와 기록물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나아가 사건 현장에 대한 꾸준한 답사를 통해 간접적인 이해와 경험의 한계를 보완하려는 지속적 실천의지로 이어지고 있다. 강유정의 차분하리만큼 내밀하고 진지한 호흡은 산과 들, 하늘, 바다, 바위 등 대자연의 주요 지형물을 대상으로 발화한다. 휘몰아치듯 이들 대상물에 거칠게 부딪거나, 자연물을 힘 있게 비집고 출몰한다. 때론 리드미컬하게 반복하며 주변을 맴돈다. 살아 꿈틀거리고 있음이다.

 

자연에 돌출하듯 존재하는 이질적인 인공구조물과 화면 도처에서 하얗게 타오르는 뜨거운 기운은 대상에 투영, 잠복되어 있는 어떤 사건의 내밀한 기운, 이를테면 응어리, 한, 영혼 등으로 보이기도 하고 사건의 역사적 존재, 혹은 정신 나아가 앞으로 도래할 사태의 징후, 일종의 전조와도 같은 상징존재로 읽힌다. 작가 자신이 만난 설화, 에피소드, 사건 등의 근간인 영혼이나 정신이 공감 가능한 생생한 화법으로 발현되고 있음이다.

 

크고 작은 화면, 때론 프레임이 없는 대형화면 가득 전면적으로 배어 있는 강유정 특유의 끊임  없는 성취동기와 작업의지는 그의 작품을 접하는 이들에게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떤 장면과 사건 속에 함께 하고 있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먹그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유연한 강유정의 회화술이 섬세하고 따스한 숨결과 함께 화면 구석구석에 스미어 쉼 없이 공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강유정의 회화는 풍경이다. 실재하는 대상이요, 자연이지만, 그것은 실제 풍경과 사뭇 다르다. 강유정은 다시점, 복합시점으로 실존하는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임의로 병치하거나 해체, 재구성했다. 이질적인 사물을 슬쩍 화면에 개입시키기도 했다. 시선을 분산시키는 동시에 대상의 맥락을 정치적으로 강조하는 의도적, 역설적 포치로 보인다.

 

강유정은 관찰자, 목도자로서 화면과 대상의 눈높이 아래에 위치하기도 하고 때론 하늘 저 멀리에서 부감으로 내려다보기도 한다. 고정된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여러 관점과 시점, 장소에서 바라보고 경험한 대상과 지역을 한 화면에 동시에 표현하고자 했다. 학습된, 관성적인 풍경시선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한 것으로 이해된다. 사건을 기억하고 그것이 자신의, 우리네 기억 속에 투영되어 자리매김하는 방식에 대해 주목하고 추체험하고자한 흔치 않은, 쉽지 않은 태도이자 방식이다.

 

강유정의 관심과 방식은 대부분 검은색을 주조로 이른바 발현發玄한다. 강유정에게 있어 검은색은 대지의 색이기도 하고 모든 색을 끌어안는 지적인 색인 동시에 포용의 색이기도 하다. 소외의 감정과 아픔을 숙명처럼 묻어버리고 삭이며 익명화하려는 자의적 억압기제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대상과 사건에 대한 작가 자신은 물론, 관객의 집중도를 강화하는 효과와 함께 화면에 출몰하는 이런저런 존재와 해방의 기운을 강조하는 이중의 효과도 있다.

 

주제나 소재 측면에서 다분히 서사적일 수 있는 강유정의 작업이 무겁고 버겁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의 검은색이 균일한 하드블랙이 아니라는 측면도 있지만, 오일이 화면 내 균형을 잡아주는 절묘한 회화적 파트너로 작용하며 자칫 엄숙하고 딱딱하게 경직될 수 있는 화면을 보다 유연하고 서정적인 인상으로 완화시켜주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강유정은 청색조의 화면을 비중 있게 실험, 구사하고 있다. 검은 색조의 모노톤 화면에 익숙해서 일까, 기존의 블랙톤의 작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쾌하고 투명한 느낌이다. 다만 대상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보다는 바뀐 청색, 아니 색보다는 색과 색 사이로 드러나는, 특히 여백부분에 두드러지는 기름진 면이 우선 눈에 잡힌다. 화면을 꽉 채우는 기왕의 과감한 호흡으로부터 이른바 여백을 허용하며 부드럽게 힘을 뺀 탓일까. 오일의 비율을 효과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강유정의 회화/풍경은 현란하고 요란한 손재주와 붓질로 화면에 이들을 부리고 얹어낸 훈련된 주술행위라기보다는 대상의 물리적 상처는 물론 그 속에 잠복되어 있는 심리적 상흔을 접신하듯 자신의 영육으로 빨아들이고 녹여낸 독특한 ‘아니마anima’적 심리지형이라 하겠다.

 

강유정은 오늘도 몸을 움직여 잃어버린 기억과 시간을 찾아 나선다. 작업실과 학교 주변의 지형으로부터 시작한 애지적愛智的 관심과 실천은 최근 제주의 시공과 사건으로 이행하고 있다. 천혜의 자연 환경 속에 내장되어 있는 상흔과 식민잔재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떨림과 울림을 또박또박, 혹은 미끌미끌한 특유의 작업으로 발현發玄시키고 있다.

 

남겨진 흔적과 잊힌 사실 등으로 뒤엉킨, 기억 속으로 ‘버려진 풍경’, 인식으로부터 ‘소외된 풍경’을 접하고 확인하며 사건의 시공을 추체험하듯 따라 들어가는 강유정의 검고 푸른 작업은 이른바 ‘그려진 르포르타주reportage’라 하겠다.